영화 여기는 아미코 후기리뷰 줄거리 결말 해석 원작 배우 오오사와카나
이쪽은 아미코 감독 모리 유스케 출연 미등록 개봉 2024.02.28.
이쪽은 아미코 감독 모리 유스케 출연 미등록 개봉 2024.02.28.
따뜻함을 기대했다면 실망하는 가족 영화『 여기는 아미코 』의 포스터나 설명을 보면 아이 때문에 가족이 말썽이 되었고, 또 하나 되는 이야기일까?할 거에요정서적으로 “아무도 모른다”정도로도 좋다는 쪽으로 추천하고 싶은 작품입니다.
더해서 꼭!
가족과 함께 보지 마세요.조금 독특하고 정서적으로 충격을 주는 내용이 있어도 결국 따뜻하게 끝나겠지?으로 보면 충격을 받습니다.
영화” 온다”를 보면 아이들이 잔인하다는 말이 나옵니다.
아이들은 낮은 도덕적 인식과 사회화로 어른들이 보면 놀라운 잔인한 행동을 할 때가 있습니다.
작은 동물이나 곤충을 잡아 죽이는 모습이 그 대표적인 예입니다.
아이들의 이러한 순수한 잔인함은 때론 어른들에게 잊지 못할 상처를 주기도 합니다.
이 작품은 초반 아미코의 캐릭터를 보이기 위해서 집이라는 공간과 아미코의 시야를 활용합니다.
살문이라고 다다미로 된 공간은 이들 가족이 부드럽게 보이지만 결국은 완전히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 관계가 될 수 없다는 것을 나타내기 위한 장치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이는 어떻게 된 거라고 생각하지만.『 엑소시스트 』의 감독 윌리엄·후리도 킨는 일본의 모래와 돌로 된 정원을 보고폭풍 눈물을 흘렸다고 합니다.
이 정원에서 판게아 이후에 깨진 대륙과 대양을 보는 기분이었다 합니다.
이 정원처럼 일체를 공유하고 있던 어머니와 아이만 세상에 나온 순간 완전히 서로를 이해할 수 없는 사이가 된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고 합니다.
격자 문을 두고 어머니의 뒤에서 집에서 과외를 하고 있는 학생들을 바라보고 있는 아미코의 모습은 어머니의 세계에 다가가고 싶다는 아미코의 모습을 보이고 줍니다.
다만 어머니의 사마귀에 시선이 집중된 모습, 격자문 사이에서 학생들과 짝사랑하는 김을 바라보고 있다는 점에서 완전히 상대를 이해 못하는 아이의 모습을 강조합니다.
어머니는 임신으로 민감하게 되었을까, 아연 요시코에게 엄격하면서도 짜증이 섞인 모습을 보이기도 합니다.
이 장면이 아마 아미코이 평소에도 다른 사람과는 달랐지만, 임신에 의해서 이런 부분을 더 이상 받아들이지 못한 것을 보이는 것은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 뒤 어머니는 유산합니다.
유산 후 돌아온 어머니는 우산을 쓰고 뙤약 볕 아래에서 기다리던 아미코의 얼굴을 쓰다듬고 애정을 표합니다.
문자의 공부도 같이 할 “과 온화한 모습을 보이고 줍니다.
이 장면에서 보면 아미코이 땀에 젖어 있는 모습을 강조합니다.
아기가 엄마의 배에서 처음 나올 때 양수로 온몸이 젖은 상태에서 나옵니다.
이런 부분을 아미코의 상태를 통해서 보이며 잃어버린 아이를 잊고 아미코에 집중하겠다고 한 어머니의 모습을 암시한 게 아닌가 싶습니다이 일종의 결심은 아미코에 의해서 완전히 무너집니다.
아미코는 김에 죽은 아이를 위한 무덤을 만든다는 글씨를 쓰겠습니다.
엄마에게 아미코이 드물어요, 선생님의 집의 딸이기 때문에 잘 놀아 달라고 했다 놀이는 이 말에 따릅니다.
죽은 아들의 묘의 문자를 보고서 아미코의 어머니는 말 그대로 패닉이 됩니다.
이 일로 아미코의 집은 문자 그대로 풍비박 산이 됩니다.
아연 요시코의 어머니는 심각한 우울증에 걸리고 아버지는 혼자 모든 것을 감당할 수 없어 방치합니다.
순진했던 아미코의 형은 집안을 망치고도 계속 귀찮게 여기다 동생에게 분노를 표시하고 탈선 청소년이 되어 버립니다.
그리고 자꾸 학교에서 고백한 아미코에 의해서 왕따 상태였던 김은… 그렇긴이 일로 어머니에게 꾸중을 듣고 아연 요시코에 노여움을 푸고 절교합니다.
아미코의 세계에서 볼 수 있는 가족 동상이몽작품은 그 후, 중학생이 된 아미코이 베란다에서 나는 귀신의 목소리에 시달리는 모습, 학교에서도 친구와 어울리지 못하는 모습, 구겨진 집의 모습을 보이고 줍니다.
이 모습을 보면서 개인적으로 생각한 것은 가족의 “동상이몽”입니다.
모든 아이는 부모로부터 자애로운 사랑을 부모는 자녀부터 귀여운 보람을 느끼는 모습을 원하는 게 아닐까 합니다.
뭔가를 원한다는 보다 그걸 바탕으로 사랑에 찬 가정을 꾸리고 싶다고요.이 작품을 보면 아미코는 직접적으로는 드러나지 않지만 꽤 확산이라는 점, 또래에 비해서 늦은 글을 깨닫게 보인다는 점에서 정신적 문제가 있는 아이였던 것 같습니다.
어머니의 이보 가게나 오빠의 대머리에 집중했다는 점도 그렇고.만약 보통의 가족 영화라면 아미코의 이런 점에서 가족이 시달리는데, 결국 서로를 이해하고 합쳐지는 결말을 보이고 준 것입니다.
그런데 이 작품은 이들 가족이 정말 동상이몽이라는 점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아미코이 원할 때는 엄격한 모습으로 아무것도 못한 엄마, 사진기와 무전기에 대해서 아미코과 다른 반응을 보여아버지 아미코이 귀신의 목소리라고 생각한 것이 새의 소리라는 것을 베란다로 나가서 거칠게 알린다 오빠 등 그 날의 사건 이후 아미코의 세계에 관심을 갖고 이해하는 구성원이 없습니다.
영화는 쌍방이 이해할 수 있는 전개를 만들려고 노력합니다.
아미코의 입장만으로 작품을 바라보고 무조건적인 온정을 보내는 시선을 막겠다며 동시에 아미코에 대해서 무조건 부정적 감정이 느껴지지 않으려고 합니다.
개인적으로 보면서 이런 점이 너무 힘들었던 영화입니다.
아미코가 미움 받는 이유를 알고 가족이 정말 힘들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가족 중 누구 한 사람이라도 힘들겠지만 아미코에 진심으로 대하더니 돌아선 게 아닌가 싶었습니다.
누구도 어릴 때 그런 경험이 있을 겁니다.
세상이 나를 알아주지 않고 무시한다는 생각이네요.그런 때 여러분의 곁을 지켜서 준 존재가 부모님이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부모가 아이에게 무너지고 안 일어나면.그 끔찍한 상황을 작품은 나타내고 있습니다.
무전기와 바다가 남긴 희망의 조각<여기는 아미코>의 결말은 개인적으로 정말 충격적이었습니다.
아버지는 아미코을 할머니의 집으로 보냅니다.
아무래도 아미코이 있는 한 아내가 회복될 수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나 봅니다.
이 장면이 아미코을 설득하고 약속 정해서 보내는 것이 아니라 속이고 보내는 유기에 가깝습니다.
이 장면이 더 가슴이 아픈 것은 그 전에 아미코이 만난 김에 폭행당한 때문입니다.
과거에 악연이 당한 친구가 다시 만나면 화해하는 장면이 벌어지기를 예상하는 것입니다만… 그렇긴여전히 아미코에 분노한 놀이는 예전보다 크게 된 몸에 자라지 않은 아미코을 타격을 입습니다.
정말 싫어하는 이 아미코에게 부친이 최선이라고 생각 한 선택은 세상에 완전히 혼자 남은 기분이었을 것입니다.
다음날 아미코이 바다에 나갔을 때 수면 위에 있는 것은 “죽음”들입니다.
아미코는 뱃속의 동생이 죽은 뒤 그들의 존재를 상상했습니다.
여동생으로 추정되는 캐릭터와 함께 이 죽음들이 아미코을 향해서 이리로 오라고 손짓합니다.
이 작품의 스타일상 정말 아미코이 바닥에 뛰어들 가능성도 있으므로 조금 긴장했습니다.
아니, 유기 후에 자살?이는 고 자극인데?라고 생각했다.
그들에게 이산 요시코는 손을 흔듭니다.
이 인사의 의미는 이별을 뜻하는 것입니다.
죽음도 역시 손을 흔들고 사라진 것을 보면요.이 결말을 통해서 작품은 지금부터 아미코의 인생이 넓은 바다처럼 희망에 차 가는 것도 있다는 따뜻한 희망을 전합니다.
극중 아미코은 모든 사람들이 싫어하신 건 아닙니다.
아미코과 어릴 적부터 아는 계속 목소리를 썩이는 아이를 통해서 소통의 가능성을 열어 놨어요.아미코이 김에 관심을 나타낸 것처럼 누군가는 아미코에 관심을 가지고 신경을 쓰고 있을 것이라는 가능성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그 때문에 남겨둔 것이 무전기입니다.
언젠가 아미코의 반대 측에서 이 무전기에 답하고 주는 누군가가 등장하는 것은 아닐까 생각합니다.
문장이 서투른 아미코에게 무전기는 소통에서 보다 큰 가능성을 내포한 것이라 생각합니다.
게다가 카메라의 경우도 아미코가 훈련에서 찍어 봤다는 한장을 제외하고는 필름이 남아 있어 이후 그들의 앨범을 묻는 행복한 순간이 벌어질 가능성을 암시한 게 아닌가 싶습니다<여기는 아미코>는 누군가의 부모님이지, 누구의 아들인 세대에 가장 큰 공감적인 영화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나도 아미코처럼 누군가가 저를 이해 못한 때가 아미코의 가족처럼 누군가를 이해하기 어려웠던 때가 있는 분들이라면 이 영화에 더 강한 인상이 남는 것은 아닐까 생각합니다.
추억은 떠듬떠듬 존재할 수 없는 것 만큼 보편적인 통증의 정서를 자극하는 성장 영화”여기는 아미코”이었습니다.